토요일, 병원과 시장 그리고 봄밥상
토요일 주말 아침, 남편과 함께 오전 병원을 다녀왔다.
남편은 2급 지체장애인이다. 여러 병원을 다니며 꾸준히 진료를 받고 있다.
오늘은 비뇨기과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남편을 챙겨 집을 나섰다.
주말 아침 병원이 문을 연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직장일로 평일에는 늘 바쁘다 보니,
남편 병원에 가는 날은 대부분 내가 연차를 내야만 했다.
그런데 비뇨기과는 토요일에도 문을 연다.
그 사실 하나가 오늘은 유난히 고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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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녀온 뒤 약국에 들러 약을 탔다.
요즘 국제 정세 때문인지, 약국에서는 조제를 한 통으로 받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재래시장에 들렀다.

시장에는 봄이 한가득이었다.
두릅, 세발나물, 시금치, 딸기까지
온갖 봄나물들이 “나를 봐달라”고 말하는 듯 싱싱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두릅과 세발나물, 시금치, 딸기를 샀다.
그리고 발길은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열무, 얼갈이, 싱싱한 파들이 가득한 채소 가게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집에 김장은 김치밖에 없는데…”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은 이미 열무 한 단, 얼갈이 한 단, 파 두 단을 들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휠체어에 장바구니를 여러 개 매달아 주었다.
무거운 짐을 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유일하게 나를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더 무거운 것들은
“내 무릎 위에 올려라”고 말했다.
나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남편은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30년 동안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본 적이 없다.
늘 혼자 가정을 꾸리고, 일하고, 집안일과 남편을 돌보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억울함보다는 이제는
“그래도 이 삶이 나답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든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작은 고마움이 생겼다.
“여보, 고마워. 가는 길에 커피 사줄게.”
그러자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커피 먹을 손이 부족하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남편 휠체어 뒤를 따라 걷는 길은 꽤 괜찮았다.
따뜻한 봄 햇살 아래
장바구니 없는 손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마음은 더 가벼웠다.
남들은 별것 아닌 풍경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꽤 따뜻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니 그대로 녹초가 되었다.
점심은 굴짬뽕과 탕짜면.
나는 굴짬뽕을 조금 남겨 남편에게 덜어주고
대신 탕수육 몇 조각을 슬쩍 가져왔다.
그렇게 점심을 마치고 나서는 미뤄둔 일을 시작했다.
열무김치, 얼갈이김치, 그리고 파김치.
나는 두 가지 김치를 함께 담갔다.
이렇게 한 번에 두 가지 김치를 담그는 건 처음이었다.
살다 보니 사람은 자꾸 익숙해지고, 또 자란다.

나는 원래 손이 빠르거나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똥손”에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다 보니
정리와 공간이 주는 기운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집안을 정리하려는 습관이 조금씩 생겼다.
물론 그것도 늘 완벽하진 않다.
그리고 나는 입맛만큼은 꽤 까다로운 편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졌다.
결국 이 “똥손”도 이제는
김치 하나쯤은 맛있게 담글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 시기에 적당히 익은 열무 얼갈이 김치는
회사 도시락으로 가져가도 될 만큼 맛이 좋았다.
어쩌면 결핍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늘 칭찬과 격려로 나를 인정해준다.
그 작은 말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다.

김치 두 가지를 담그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열무와 얼갈이를 같이 절이고,
파김치 절인 물로 양념을 조금 더해주고,
같은 양념 다라이에서 버무리니 맛이 더 깊어졌다.

김치의 맛은
결국 이 수고를 이기는 힘이 있다.
저녁에는 시장에서 사온 두릅과 세발나물로 식탁을 차렸다.
두릅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이 시기가 아니면 먹을 수 없기에 기꺼이 선택했다.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두릅의 맛은
봄 그 자체였다.

세발나물은 처음 먹어보는 나물이었다.
이름의 뜻은 모르지만
아삭하고 신기한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두부조림과 계란말이까지 곁들여
조용한 봄날 저녁 밥상이 완성되었다.
벚꽃 구경 대신
나는 밥상 위에서 봄을 만났다.
이렇게 또 하나의 계절을
조용히 지나보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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