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흘려야 비로소 익어간다
퇴직 후,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낸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계란을 꺼낸다.
후라이를 하기도 하고, 삶은 계란을 먹기도 한다.
삶은 계란은 한 번에 열 개쯤 삶아두면 며칠 동안 든든한 아침이 된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계란은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껍질과 흰자가 한 몸인 것처럼 달라붙어, 예쁜 계란 하나를 얻기 위해 마음까지 상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계란을 서두르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꺼내 10분쯤 상온에 둔다.
차가웠던 계란에 작은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마치 계란이 땀을 흘리는 것처럼.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삶으면 신기하게도 껍질이 훨씬 잘 벗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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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분.
타이머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압력밥솥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늘 내 감만 믿었다.
'이쯤이면 되겠지.'
하지만 밥은 자주 눌었고, 바닥에 붙은 누룽지를 긁어낼 때마다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추가 힘차게 흔들리기 시작하면 중불로 줄이고 타이머를 5분에 맞춘다.
그러면 신기할 만큼 밥이 눌지 않는다.
윤기 나는 갓 지은 밥에서는 따뜻한 김만 피어오른다.
오랫동안 살림을 한 사람들은 손대중을 믿는다.
그 손맛도 분명 소중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 감보다 시간을 조금 더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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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머는 조급하지 않고,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내어준다.
생각해 보면 계란도 땀을 흘린 뒤에야 속살을 드러내고,
압력밥솥도 뜨거운 김을 충분히 내뿜은 뒤에야 가장 맛있는 밥을 완성한다.
사람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나는 산책 대신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고 또 달리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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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체질상 땀이 거의 없었다.
여름에도 손발이 차가웠고, 잠잘 때는 늘 수면양말을 신고 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달리기를 시작한 뒤부터는 몸이 달라졌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쏟고 나면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맑아진다.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병원보다 내 몸이 먼저 알려준다.
이제는 안다.
땀은 힘든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
무언가 잘 익어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계란도,
압력밥솥도,
그리고 사람도.
조금은 뜨겁게,
조금은 땀을 흘려야
비로소 가장 좋은 모습이 된다.
오늘도 나는 주방에서 작은 땀을 만나고,
밖에서는 달리며 큰 땀을 흘린다.
그 땀 덕분에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조금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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